
상허 이태준의 작품은 문학의 자율성과 언어의 정련을 모범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근대문학의 완성자라는 평가를 받는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'월북작가'라는 행적으로 인해 그의 작품들이 '금서'로 묶여있었다.
이태준은 어릴때 고아가 되었고 고학으로 대학을 갔지만 중퇴를 했다. 그리고 돌아와 일제 식민지하의 조선에서 작가를 하며 간신히 생활을 꾸려 나간다. 이후 월북을 하게 되고 그 이후로는 노동자로 전락해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다고 추측이 될 뿐이다. 이태준의 생애를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리 역사의 비극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 같다고 문학평론가 김치수는 전한다.

● 이태준 (저자)
(李泰俊, 1904~?)
1904년 11월 4일 강원도 철원군 무장면 신명리 출생. 호는 상허(尙虛).
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.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며 4학년 때 동맹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. 1925년 도쿄에서 단편 <오몽녀>를 <조선문단>에 투고해 입선하였다.
1926년 도쿄 조치대학[上智大學] 예과에 입학하여 1927년 중퇴 후 귀국했고, 1929년 개벽사에 입사하였다가 《조선중앙일보》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. 후에 《조선중앙일보》학예부장 등을 지냈다.
1933년 문단에서 김기림(金起林)·정지용(鄭芝溶) 등과 9인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<가마귀>, <복덕방>, <밤길> 등을 발표하였으며,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.
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,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.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.
해방 직후에는 임화(林和)와 청년작가대회를 결성하였으며,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, 1946년 6월 월북하였다.
이 시기에 발표한 <해방전후>는 조선문학가동맹이 제정한 제1회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.
월북 직후인 46년 8월 중순부터 소련을 방문한 뒤 <소련기행>을 출간했고, 48년에는 <농토>, 49년에는 <첫 전투>, <호랑이 할머니>,
<먼지> 등을, 6·25 중에는 <누가 굴복하는가>, <미국대사관> 등을 발표하였다. 6·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.
1956년 노동당 평양시위원회 산하 문학예술출판부 열성자회의에서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비판을 받고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.
1934년 첫 단편집 《달밤》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《까마귀》 《이태준 단편선집》 《이태준 단편집》 《해방 전후》등 단편집 7권과 《구원의 여상》 《화관》 《청춘 무성》 《사상의 월야》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.

제1권
(작가 앨범 / 해설-이태준 평전 / 김치수)
단편소설
오몽녀 / 행복 / 모던 걸의 만찬 / 그림자 / 온실 화초 / 누이 / 기생 산월이 / 백과전서의 신의의 / 은희 부처 / 어떤 날 새벽 / 결혼의 악마성 / 고향 / 아무 일도 없소 / 봄 / 불우 선생 / 천사의 분노 / 실낙원 이야기 / 서글픈 이야기 / 코스모스 이야기 / 슬픈 승리자 / 꽃나무는 심어놓고 / 미어기 / 아담의 후예 / 어떤 젊은 어미 / 어떤 화제 / 마부와 교수 / 달밤 / 방물장사 늙은이 / 빙점하의 우물 / 촌뜨기 / 점경 / 우암 노인 / 애욕의 금렵구 / 색시 / 손거부 / 순정
제2권
3월 / 까마귀 / 바다 / 장마 / 철로 / 복덕방 / 코스모스 피는 정원 / 사막의 화원 / 패강랭 / 영월 영감 / 아련 / 농군 / 밤길 / 토끼 이야기 / 석양 / 사냥 / 무연 / 돌다리 / 뒷방 마님 / 해방 전후
부록―어휘 풀이 / 작품 연보 / 참고 서지 / 작가 연보